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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ttizm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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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나의 점수 : ★★★ 영화 <타이타닉> 같은 소설. 책을 읽고 난 직후에는 흥분과 감동으로 가슴이 뛰지만, 시간이 흐른 후 <스무살, 도쿄>와 같은 여운이 아쉬운... 2009-01-24 오쿠다히데오의 매력이 한 풀 꺽인 소설. 지난 두 달간, 책을 한 권도 못 읽었다. 이사를 하는 바람에 전철로의 이동 시간이 짧아진 탓이 크지만, <스무 살, 도쿄> 이후 필 꽂히는 책을 만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앞 부분만 읽다 책장에 도로 꽂아놓은 책이 9권째가 되자, 불안감이 몰려오기까지 시작했다. 이대로 책과 영원히 멀어지는 건 아닐까. 이런 두 달간의 방황에 마침표를 찍게 해준 것이 오쿠다 히데오의 <최악>이다. 졸업 이후 좀처럼 볼 일이 없는 6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지만, 카피 그대로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속도에 가속도가 붙는’ 흡입력 때문에, 다 읽는데는 일주일의 출퇴근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다. <최악>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세 사람의 세 가지 인생이 등장한다. 영세한 철공소를 운영하는 마흔 일곱의 가와타니 신지로, 가출 후 파친코를 전전하는 스무 살의 날건달 노무라 가즈야, 그리고 착한 맏딸이자 국내유수의 은행 직원인 스물 셋의 후지사키 미도리.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들 세 사람의 일상사가 중후반부까지 일일드라마처럼 디테일하게 묘사된다. “경제도, 사랑도, 인생도, 모든 것이 최악으로 치닫는다!”는 메인 카피를 보면, 평범했던 주인공의 일상에 갑자기 터진 최악의 사건이 주인공들을 위기로 몰아넣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내가 오쿠다 히데오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최악>에서 말하는 ‘최악’의 사건은 세 사람의 일상- 철공소의 스폿용접 작업과 제조업 피라미드에서 3차 하청업체의 비애, 자잘한 절도 행각과 애정 관계, 매일같이 반복되는 창구 업무와 참석하기 싫지만 자주 열리는 은행 공식행사 곳곳에 숨어있다. 시간이 가면서, 늘상 있어왔던 자잘한 문제들이 함께 진행됨에 따라 서서히 불행의 씨앗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데, 그러다가 우연찮게 (세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필연적이지만) 세 사람의 인생이 한 곳에서 뒤엉킨다. 누군가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한 명의 사람을 알게 되는 것과 같다고. <최악> 한 권을 통해 나는 여러 명을 동시에 알게 된 느낌이다. 돈도 없고 빽도 없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해야 할 고민을 층층이 안고 살아야 하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 신지로,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십 년 가까이 이명에 시달리는 외로운 가즈야, 뭐든지 참고 이해하고 억제하며 살아가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린 미도리. 이 밖에 불행한 인생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주변 인물들. – 가에데, 시바타, 야마자키. 물론 이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내 가슴을 아프게 했던 인물은 신지로였다. 그는 정말 정직하고 성실하게 가정과 공장을 지키려고 한 죄 밖에 없고, 사회 구조적인 약자였다. 그렇다고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우울하고 어두운 것은 결코 아니다.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속도감과 치밀한 심리 묘사, 다양한 인간 군상의 통찰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런 두께의 책을 전공 서적도 아닌데 독파했다는 뿌듯함도 한몫 하는 듯하다.
** 책 속 한 문장 **
"안 좋은 일이 있다는 건 인생의 중심에 서 있다는 증거야. ... 내 나이쯤 되면 안 좋은 일조차 없어. 워낙에 갈곳이라야 병원하고 도서관하고 은행밖에 없거든. ..." (218쪽)
오쿠다 히데오는 항상 소설 속에 어른을 등장시켜 좌절한 젊은이에게 희망과 응원의 메시지를 던진다. P.S 한 달 후... 앞으로는 책을 읽고 나서 한 달쯤 후에 리뷰를 쓰든지 해야겠다. 책을 읽고 난 직후에는 흥분으로 가슴이 떨려 별점을 후하게 주었었지만,시간이 지나자 내 머리 속에 이 작품이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스무살 도쿄> 때와 같은 긴 여운이 아쉽다. 오쿠다히데오, 그르지 마~요. 치유하는 글쓰기박미라 지음 / 한겨레출판 나의 점수 : ★★★ 한 번쯤은 해볼만한, 내면 치유를 위한 글쓰기 가이드 2009-01-27 죽도록 미운 당신에게 편지쓰기, 내 상처와 마주하기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내 삶에 큰 의미가 있었던 한 사람으로 인한 상처 때문이었다. 지금 그 상처 자체는 많이 아물었지만, 그 때 생긴 피해 의식이 최근까지도 내 의사 결정들에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인생이 조금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는 궁금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나왔다. '글로 어떻게 치유한다는 걸까?' '저자가 정신과 전문의도 아니던데.'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정말 나한테 효과가 있을까?' 등등.... 이 책은 한 마디로, 저자가 진행했던 집단 심리 치유 프로그램의 경험담을 담은 책이다. 제목만 보고, 글쓰기의 여러 기능 중 하나로 치유적인 기능을 강조하는 내용일 거라는 내 예상과는 많이 어긋났지만, 꽤 도움이 될 것 같긴 하다. 그러나 문학도 인문서도 아닌 '실용서'니 만큼, 읽고 깨닫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 아직까지 수확은 거두지 못한 셈이다. 저자는 가장 먼저, '죽도록 미운 당신에게' 편지 쓰기를 권한다. 나는 케이스가 조금 다르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오심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일단 내면 깊숙이 억압해놓았던 내면의 미움과 분노를 해소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함으로써 마음의 짐을 덜고, 글쓰기를 통해 분노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방식만 조금씩 다를 뿐, '치유하는 글쓰기'는 모두 이와 똑같은 원리로 되어있다. 억눌러 왔던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을 내 것으로 인정하고 글로 표현한 후, 한 걸음 물러서서 내 상처를 바라보며 근본적인 원인부터 치유해가는 것이다. 책에는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글이 예시로 많이 실려있다. 문법에 안 맞는 문장은 기본이고, 단어만 죽 늘어놓거나, 계속 같은 말만을 되풀이하는 글도 있다. 심지어 상스러운 비속어나 욕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잘 쓰고 못 쓰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면의 감정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글들은 아주 어릴 때 겪은 가정불화나 폭력, 성폭력 등으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글이 많았다. 그에 비하면 내 상처는 애교 수준이었다. 우습지만, 이런 이유로도 사실 큰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소그룹 프로그램의 방법론을 소개하고 있는 만큼, 실제로 혼자는 할 수 없는 일들도 많다. 소그룹의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정기적으로 만남을 갖고, 온라인에서 글과 댓글을 통해 서로 소통하면서 안으로 꼭꼭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세상을 향해 여는 연습을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에서 치유는, 글쓰기 그 자체를 통해 이루어지기 보다, 깊은 상처를 여러 가지 형식의 글을 통해 표현하고, 그것을 온라인에서 타인과 공유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다보니 이 책에 의하면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결국 저자의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스스로 그런 소그룹을 만들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 그런 방법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을 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편지쓰기 등의 글쓰기는 충분히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고, '셀프인터뷰:나에게 나를 묻다' '떠나보내기' '핵심가치 찾기' 같은 것들은 치유를 위해서 뿐 아니라 창의성을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꼭 해볼만한 흥미로운 글쓰기 방법인 것 같다. 나도 이제 내 상처와 용기있게 마주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27살 여자가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전미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나의 점수 : ★★ 이 책을 사 읽을 바엔, 옆 자리에 앉은 대리님에게 술을 사달라고 해라. 2008-11-20 속지 말자, 목차빨. 다시 보자, 표지빨.
15개월 가량 직장생활을 하면서 뼈아프게 느낀 것은, 직장생활에 있어서 업무적인 능력이 30이라면, 조직문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70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직급이 높아질 수록 달라지겠지만.) 또, 내가 아무리 똑똑하고 열정이 많다고 큰 소리 쳐도, 학교 다닐 때 동아리며, 학회에서 단체 생활을 성공적으로 해왔다고 잘난 척을 해도, 군대 생활을 했던 남자들의 조직 융화력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 저자의 말마따나, 회사문화, 조직문화는 남자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남자들에게 익숙한 문화다. 그러니 여자에겐 생소하고 힘들 수 밖에 없다. 잘 하고 있다, 싶으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펑, 이번엔 나아졌겠지, 싶으면 또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펑펑 터지는 총칼없은 전쟁터 같은 곳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작년 11월,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나는, 회사라는 조직의 냉혹함(?)에 다시 한 번 한기를 느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정확하게 이 책의 코어 타겟이었던 것이다. 목차를 보니 완전히 나를 위해 쓰여진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전미옥씨의 <성공하는 여자의 자기경영노트>에 대실망을 한 적이 있으면서도 '미워도 다시 한 번' 장바구니에 책을 담았던 것이다. 또, 머리를 하나로 묶고, 내가 아주 즐겨하는 자세인 책상 다리를 하고 사무용 의자에 앉아 야근(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 표지를 보고 야근을 떠올릴 것이다.)을 하는 젊은 여성의 모습에 완전한 동질감을 느껴, 구매하기 버튼을 망설임없이 눌렀던 것이다. 각설하고, 이 책은 목차가 다인, 누구나 다 아는 당연한 내용만을 모아 만든 책이다.직장생활을 안해 본 사람도 상식만 가지고 이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내 직장 생활이 보통 사람들보다 17배쯤 혹독해서, 지난 1년여동안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거나. ) 나와 같은 고민으로 힘들어하며 이 책에 SOS를 치고자 하는 직장인 여성이 있다면, 이 책을 사 읽는 대신, 차라리 옆 자리에 앉은 대리님에게 술을 사달라고 해라. 그게 어느 모로 보나 107배 효과적이라고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아니면 다른 훌륭한 처세술 책을 찾아 보거나.) 하지만, 직장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또래 친구들끼리 모여 넋두리나 하고 있을 바엔 이 책의 목차를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무료니까. 쿨하게 한걸음서유미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나의 점수 : ★★★ 학창시절 ‘그 나이쯤 되면 이러이러한 정도는 되어 있겠지’ 했던 기대가 모두 무너져버린 지금,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 등을 토닥여주는 사촌 언니 같은 소설. 2008-11-30 아직 덜 큰 어른들을 위한 위로
학교 다닐 때 ‘그 나이쯤이면 이 정도는 되어 있겠지’ 했던 ‘바로 그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지위나 명예는 커녕, 통장 잔고조차 얼마 없다는 것,부모님은 하루하루 약해지시고 늙어가시는 게 눈에 보여 안타까운데, 모아놓은 돈이 있나, 번듯한 직장이 있나, 그것도 아니면 든든한 사윗감이 있나, 큰 딸로서 부모님 기 펴드릴 일이 없어 마음이 늘 불편한 것. 하지만 표현은 결코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 학창시절에 공부 꽤나 했고, 이것저것 관심도 많고 아는 것도 많았지만 결국 쥐꼬리만한 월급 받으며 불안정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학창시절에 성적은 늘 바닥이었어도, 착한 외모를 타고나 일찍부터 '연애'계에 뛰어든 친구가 지금 돈 많은 남자 만나 떵떵거리며 사는 걸 보며 패배의식을 느끼는 것, 돈 잘 벌고 시집 잘 가 엄마 호강시켜주는 엄친딸과의 비교에 엄마와 한바탕하고 방에 들어와 문 닫고 훌쩍이는 일 등. 우리 주변, 아니 내 주변에서 늘상 일어나는 일들과 내가 늘 생각하는 것들을 소설은 놀라울 정도로 디테일하고 실감나게 ‘재연’해내고 있다. ‘콩 외엔 아무것도 넣지 않았습니다.’라는 어떤 유제품의 광고 카피 대신'현실 외엔 아무것도 넣지 않았습니다.’ 라는 카피가 떠오를 만큼.
주인공 연수가 지적했던 대로 ‘보통 영화나 소설 같으면’ 로맨스가 피어 올라야 할 딱 그런 상황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주인공을 힘들게 했던 생각 없고 운 좋아 잘 살게 된 친척들이 마지막에 가서 불행해지거나 혹은 알고 보면 불행하게 살고 있었다느니, 하는 권선징악적 장치도 없고, 뒤늦게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주인공이 결국은 꿈을 이룬다는 상투적인 엔딩도 <쿨하게 한걸음>엔 없다. 이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 드라마틱하고 임팩트 있는 요소가 한 두 개쯤 있긴 해야 한다는, 작가로서 뿌리치기 힘든 유혹을 모두 이겨낸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소설이 우리들의 현실을 심하게 잘 반영한 탓에, 소설은 내가 정리하지 못한 혼란스러운 현실 또한 혼돈스러운, 정리되지 못한 모습 그대로를 그려내고 있다. 결국, 내가 정의 내리지 못한, 피터팬과 웬디의 경계에 서 있는 ‘나’의 인생, ‘나’의 꿈, ‘나’의 미래를 정의 내리는 일은 작가가 아난 바로 나 자신이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당신의 젊음에게 건배! <스무살, 도쿄>와 느낌이 비슷한 소설로 무라카미 류의 <식스티 나인>이 생각난다. 젊은 날의 꿈과 방황, 어른이 되기 위한 소년의 성장통을 코믹하고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를 통해 그렸다는 점이 비슷하다. 하지만 주인공의 캐릭터에서는 분명 차이가 난다. <식스티 나인>의 주인공 켄이 무조건 일을 저질러놓고 보는 전형적인 골목대장 스타일이라면, <스무살, 도쿄>의 히사오는 나름대로 생각도 깊고 주관도 있지만, 소심하고 귀가 얇아 남의 시선 하나 하나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이다.
"화제의 <스타워즈>가 개봉되면 누구보다 먼저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향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자. 자연스럽게 언급하는 게 좋겠지. 아참, <스타워즈>를 봤다. 뭐, 그럭저럭 재미있더라, 하는 식으로." 길에서 만난 같은 나고야 출신 아저씨가 음악 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다무라에게 했던 말이, 마치 나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아, 한 동안 뇌리에 남아있었다. 어쩌면 우리 아빠뻘되는 오쿠다 히데오가, 이 책을 읽는 자신의 아들, 딸뻘 되는 젊은이들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3장 좌절에 대한 위안(세네카)’을 읽을 때까지만해도, 나는 리뷰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나는 지금도 여전히 드 보통의 팬일 뿐 아니라, 더욱 빠져들게게 되었다. 쇼펜하우어와 니체로부터 ‘위안’ 정도가 아니라 거의 ‘구원’을 얻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고 낙심해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일까. 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라는 원제를 가진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의 제목은, 많은 독자들이 지적하듯, 책의 실제 내용과 거리감이 많이 느껴진다.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라는 부제 또한 마찬가지다. (초판본의 제목이던 <드보통의 삶의 철학산책>이 그나마 제일 낫다.) 이 책은 그렇게 가볍고 유쾌한 철학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삶 가운데 느꼈던 혹은 앞으로 닥쳐 올 고통과 좌절을 우리가 어떠한 태도로 받아드릴 것인가에 대해 우리보다 먼저 고민했던 철학자들의 삶과 이론을 통해 교훈과 위안을 얻기 위한 다소 심각한 철학 에세이인 것이다. 인기 없음에 대한 위안(소크라테스),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 데 대한 위안(에피쿠로스), 좌절에 대한 위안(세네카),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몽테뉴)에서는 마음의 위안을 주는 내용이라기 보다는 '쉽게 읽는 철학 이야기' 쯤으로 느껴진다. 여기까지는 앞서 말한 것처럼 드보통의 전작들을 생각했을 때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불쑥불쑥 든다. 하지만 점차 드보통 특유의 재기발랄한 문장에 웃음도 짓게 되고, 마음 깊이 공감도 하게 되고, 철학적 통찰에 감탄도 하게 되는데, 이 빈도수가 뒤로 갈수록 느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쇼펜하우어)'과 '곤경에 대한 위안(니체)'에서 이 염세주의자들은, 사랑에 실패한 이들과 곤경에 빠진 이들에게 '본의 아니게' 큰 위안을 안겨주는데, 여기서 '본래 가장 염세적인 사상가들이 가장 쾌활할 수도 있다'는 드 보통의 말에 200% 공감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고 울고 있는 이들과 인생이 고통스럽다고 호소하는 이들 앞에 서양 철학의 거장들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나타나 이렇게 말해주는 것보다 더 큰 위안이 어디있겠는가? "너 그 멍청이하고 안 헤어졌으면 행복했을 거 같니? 그건 완전한 착각이야. 절대 그럴 수가 없어. 이렇게 생각하는 멍청한 인간들이 많은데 말야. 사실 사랑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거든. 니가 그 놈이랑 헤어진 건, 니가 매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그 놈이 잘 나서도 아니고 니네 둘이 헤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린 자연의 섭리야. 하지만 슬프다면 마음껏 슬퍼해. 그게 정상이니까. (쇼펜하우어)" 나는 이제 니체에 대해 더 알고 싶어져서, 니체의 저서들을 당장 사 볼 생각이다. 물론 드 보통 같은 안내자없이 섣불리 덤볐다가는 몇 년간 내 책장 한 구석에서 장식품으로 쓰여질 확률이 크지만. "만약에 어느 음악가가 한 음색만을 좋아한다면 어떤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음악가는 모든 음색을 활용하여 조화를 일궈낼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역시 삶을 구성하는 선과 악을 가지고 그렇게 요리할 수 있어야 한다." - 니체 2008-10-09 나에게도 '뮤즈'가 있었으면 좋겠다. 기대했던 대로 100페이지에 달하는 스티븐 킹의 ‘이력서’는, 한 젊은이의 도전과 실패, 사랑과 성공을 다룬 일대기 영화의 시놉시스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쳤다. 특히 그가 열네 살 때, 출판사에 보냈던 원고와 함께 반환되는 거절 쪽지들을 꽂아놓은 못이 더 이상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더 큰 못으로 바꿨다는 부분에서는, 글쓰기에 대한 그의 열정이 결코 내가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깨닫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창작론'은 16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챕터는 킹만의 방법론을 한 가지씩 제시하고, 그에 관련한 경험담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특히 나는 그의 이런 방법론들이 그의 작품에서 어떻게 반영되었는가-혹은 그가 어떤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그 부분을 썼는가-를 상세하게 설명해준 부분들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90년대에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 <미저리>와 <돌로레스 클레이븐>의 원작이 예문으로 나와 신선하게 다가왔다.
또한, 맨 마지막의 '그리고 한 걸음 더'라는 짤막한 장에서는 <1408>(이 작품 역시 존 쿠삭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야 알았다.)이라는 그의 실제 작품 초고의 일부를 보여주고, 교정부호를 달아 수정본이 어디가 어떻게 수정되는지- 왜 그 부분을 삭제했는지, 수정했는지, 혹은 첨가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직접 달아 보여준다. 세심함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가 출판사로부터 한창 거절 쪽지를 받을 당시 한 고마운 편집인으로부터 "수정본 = 초고 - 10% "라는 주옥같은 충고를 듣고 그것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수정작업을 했다고 했는데, 나 또한 그의 충고에 충실하기 위해 리뷰를 수정하면서 엄청난 삭제를 감행했다.)
이 책은 글쓰기에 필요한 디테일한 테크닉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대신, 창작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글쓰기를 시도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고민했을 법한 아주 기초적이지만 중요한 문제들-소설의 시작, 소재와 배경의 선택, 주제, 상징성, 집필 과정-에 대해 간단하고도 명쾌한 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물론 철저히 스티븐 킹만의 주관적인 방법론이라 전통적인 소설창작법과는 거리가 있고, 안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창작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 그리고 이제 막 글쓰기라는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 사람에게는 대단히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날마다 아홉 시부터 정오까지, 또는 일곱 시부터 세 시까지 반드시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뮤즈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면 뮤즈는 조만간 우리 앞에 나타나 시가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마술을 펼치기 시작할 것이다. (본문 191쪽) "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나의 점수 : ★★★★★ 다시 한 번 이런 소설을 만날 수만 있다면, (과장을 조금 보태면) 내 영혼이라도 팔 것이다...! 2008-09-20 별 10개를 줘도도 모자란 수작!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오웰이 1928년부터 1932년까지 5년여 동안의 밑바닥 체험을 바탕으로 쓴 첫 작품인데, 대학교 때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는 내가 조지 오웰에게 빠져든 계기가 되었었다. 이번에 나는 이 책을 다시 사서 4일만에 다 읽었는데,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출퇴근 전철 안에서밖에 책 읽을 시간을 낼 수 없는 나에겐 경이로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3일을 내리 굶다 잔칫상을 마주 한 사람처럼 숨 한번 안 쉬고 ‘허겁지겁’ 읽어댔는데, 문자 그대로 한 번 열면 멈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편도 1시간 10분 걸리는 출퇴근길이 너무나 짧게 느껴져, 회사와 집 사이가 좀 더 멀었으면, 하는 정신 나간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취업난이 요즘처럼 심각하지만 않았다면, 회사 째고 내릴 역을 그냥 지나쳐서 소설을 끝까지 다 읽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억제하지 못했을 거다. 파리의 빈민가 콕도르 거리에 살던 주인공은 어느 날 일자리를 갑자기 잃고 방에 도둑이 들어 한 순간에 무일푼이 된다. 돈을 아끼기 위해 거의 굶다시피하며 시체처럼 침대에만 누워지내다가 어렵게 어렵게 접시닦이로 취직해 하루 17시간을 노동하며 생계를 유지해간다. 조금 편한 일자리가 있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런던으로 가는데, 외국에 나간 고용주가 한 달후에나 돌아오기 때문에 그 때부터 한 달 동안 거리의 부랑인들과 부랑 생활을 하게 된다.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진짜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이지만, 분위기는 침울하거나 비극적이지 않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서술하는데, 읽다 보면 유쾌해지기까지 한다. 특히, 인종 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콕도르 거리의 크고 작은 사건들과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나도 한 번 그 곳에서 살아봤으면’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부랑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진데, 부랑자 구호소나 구빈원 같은 곳에서도 나이가 특히 많거나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부랑인들끼리 음식과 돈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주기도 하는 등 좋은 일이라곤 없을 것 같은 부랑 생활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마냥 훈훈한 것만은 당연히 아니어서 싸움박질과 욕설, 절도, 사기 사건은 파리에서나 런던에서나 끊이지 않는다. 이 소설이 놀라운 점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하나는 평범한 우리네 삶(혹은 한국의 문화)과는 완전히 다른 그들만의 세계, 접시닦이와 노숙자의 밑바닥 삶에 관한 완벽한 통찰이고, 또 하나는 그의 재기발랄한 문장이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모습을 그림 그리듯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표현력 뿐 아니라, 내가 마치 그 생활에 풍덩 뛰어든 것처럼 피부에 와닿을 만큼 충실한 서술과 그것에 담긴 위트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대형서점에 가서 21페이지부터 3장만 읽어보길 권한다.
‘기독교 서적’으로 분류되어 비기독교인이나 나 같은 나이롱 신자의 관심에서 멀찌감치 벗어나게 된 것이 조금은 억울할 법한 책이다. (물론 독실한 크리스챤인 저자와 출판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5개의 관계 - 나, 가족, 친구, 연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각각의 챕터로 구성하고 있다. 하나의 ‘관계’는 안에는 각각 1개~3개의 장이 있는데, 마지막 챕터인 ‘하나님’은 가장 적은 양인 1개의 장이 할애되어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챕터에 하나님 얘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적인 색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주로 전문가로서의 학문적인 지식과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크리스챤은 물론, 나 같은 나이롱 신자와 비기독교인들 모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하다. 특히 최근에 이별을 경험했거나, 인간관계에서 큰 상실감을 느꼈던 사람에게 자신있게 추천하고 싶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단짝 친구와 단 둘이 유럽 여행을 갔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마음이 정말 잘 맞았던 그녀와 나는, 여행을 같이 가면 누구나 싸우고 돌아온다는 법칙에도 예외가 존재함을 입증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법칙은 예외 없이 우리에게도 적용되었다. 점심 메뉴에서부터 다음 여행지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의견 충돌이 있었고, 유럽 여행 내내 둘 사이엔 냉랭한 기운이 흘렀다. 심지어는 당시 상황과 전혀 관계가 없는 문제를 가지고 새벽까지 말다툼을 벌이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적도 있었는데, 그 때 주제가 ‘혼전순결’이었다. 당시에 우리는 둘 다 남자의 손목 한 번 못 잡아본 숙맥들이었는데 어쩌다가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주요 공격의 논지는 이랬다. - ‘기독교는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너도 기독교인이므로 성적인 문제에 관해 무조건적으로 보수적이다.’ 나는 당시에도 나이롱 신자였으므로 ‘보수적인 한국 기독교의 일원’으로 보여지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인이라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두 사람의 성숙하고 한 차원 높은 관계를 위해 조심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라는 합리적인 입장이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호불호 문제이므로 결혼 전에 관계를 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주장했었다. 그 후 5년이 지났고, 이에 대한 내 생각도 계속 변해온 건 사실이다. 나는 네 번째 친밀한 관계인 ‘연인’ 중 하나의 챕터인 ‘섹스, 거짓말, 그리고 대탈출’에서 어느 정도 그 해답을 찾은 것 같다. 저자가 미국인이라 그런 건지 몰라도, 꽤 노골적이고 대담한 표현이 있어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는데, 낯 뜨거운 내용이라고 얼버무리고 넘기는 것보다야, 의미의 확실한 전달을 위해서라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친밀한 관계 4 : 연인’의 마지막 챕터인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고 이별하기’는 제목부터 내 마음에 확 와닿았는데, 나와 그가 헤어지기 전에 자주 사용하던 단어인 ‘가해자’, ’피해자’라는 말까지 자주 등장해 묘한 감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거기에는 ‘이별의 가해자가 해야할 일’과 ‘이별의 피해자가 해야할 일’도 실려있었는데, 새로울 것은 없는 내용이었다. 최근 그와 헤어지고 난 후, 나는 나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의 ‘핵심 키워드’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정곡을 콕콕 찔리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레스와 레슬리는 입을 모은다. 결국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는, 가족, 친구, 연인을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어려움과 공허함을 느낄 것이라고. 그 핵심적인 문제는 책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니까. 이렇게 쓰니까 꼭 광고글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나와 비슷한 시기에 실연을 당한 친한 여자친구 너댓명과 한바탕 수다를 떨고난 듯 마음이 후련하다. 전남자친구 흉을 보면서 배꼽이 빠질 때까지 웃다가 눈물이 찔끔 난 것 같은 애잔한 기분도 든다. 이 책은 결국 친구와 가족, 연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그런 책이 있긴 한 걸까?) 하지만, 책 속 평범하지만 다양한 문제를 가진 젊은이들의 사례를 읽다 보면, 타인과의 관계에서의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차차 깨닫게 된다. 내가 문제라고 느끼지 못했던, 무의식에 있던 문제까지도 들추어내어 '아..! 내가 이래서 이랬구나!'라는 깨달음을 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점 인식'의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어째든 이 책은 추상적인 인간관계의 방법론을 다룬 여타 다른 책들에 비해 비교적 훌륭한 편이다.
![]() 토요일인 오늘도 오전 9시쯤 엄마의 수다가 시작되고 있었다. 반쯤 잠에서 깨어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엄마의 전화 통화 내용이 어렴풋이 들려오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내 잠을 확 달아나게하는 엄마의 한 마디가 있었으니. "니네 딸은 애인 있니?" 그랬다. 1-2년 전 만해도, 엄마들의 수다의 메인 토픽은 '취직'이었다. "니네 딸은 어떻게... 직장은 구했고?" 이렇게 시작했었더랬다. 친구 모임에 갔다 온 엄마가 나를 붙들고 하는 얘기도 늘 그랬다. 졸업하고 여전히 놀고 있다느니, 사시 1차만 몇 번을 떨어졌는데 다른 일은 할 생각을 안한다느니, 휴학하고 몇 년째 알바만 하고 있다느니... 다행히 엄청 잘 된 케이스는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전국 9등으로 사시 붙은 나보다 한 살 어린 여자 아이와, 대학에서 석사, 박사 과정에 해외 유학까지 보내 준 나와 같은 전공인 언니 한 명 빼고는.. 그런데 얼마 전부터, 친구 모임에 다녀 온 엄마의 얘기 주제가 바뀌었다! 하긴, 요새는 워낙 엄마 친구 자식들 결혼식이 많아 엄마 친구 딸들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듣는 빈도수가 는 것도 사실이다. 몇 주 전에는 성대 법대를 나와 회계사가 된 (키도 엄청 크고 잘 생긴) 엄마 친구 아들 결혼식을 갔는데, 신부가 승무원이라 그렇게 키도 크고 이쁘더란다. 신부 친구들도 하나같이 다 늘씬하고 이쁘고 신랑 친구들도 엄청 많이 왔는데, 하나같이 키 크고 그렇게 멋있더란다. 거기에 더해서, 학교 다닐 때부터 키도 작고 못 생겼던 엄마 친구가 있는데, 그 딸도 엄마를 닮아 키 작고 못 생겼는데, 성형외과 의사가 결혼하자고 그렇게 쫓아다녀서 결국 결혼을 한다는 비보(?)까지 덤으로 듣고 오셨다. (중고등학교 때) 학업성적 → (대학 입시 후) 입학한 대학교 → (대학 입학 후) 장학금과 아르바이트 → (4학년부터) 취직 → (졸업 후) 연애와 결혼 생각해보니 엄마가 엄마 친구들 사이에서 어깨에 힘을 줄 수 있었던 시기는 딱 내 대학 입학까지인 것 같다. 엄마 친구 아들, 딸 중에 나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간 애들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럼 무엇하랴. 대학 입학 후 동아리다, 과외다, 교회 봉사다 해서 탈모가 생길 정도로 바쁘게 살기는 했으나, 장학금을 받길 했나, 과외비를 모아 부모님 여행을 한 번 보내드리길 했나, 4년동안 조금씩 저금하여 단 몇 백만원이라도 만들어놓길 했나. 나보다 대학을 더 못간 애들도 장학금은 한 번씩 다 받았는데. 또 이 취업난에 취직은 어떻게 어렵게 어렵게 하기는 했으나, 박봉에 주 80시간을 넘게 일하는 IT업계에 있으면서, 1주일이면 4일을 신경성 장염에 위염, 식도염, 소화불량에 시달리며 사직서를 바탕화면에 다운받아 놓고 사표 타령만 하고 있으니, 다른 누구에게 보다 엄마 보기에 내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얼마 전까진 좋다는 남자들이라도 있었지, 요새는 직장 스트레스 때문에 망가진 성격과 피부 때문인지 그나마 있던 남자들마저도 다 정리가 되어서 내 일생을 통틀어 가장 깨끗한 남자관계를 6개월째 유지하고 있다. 내 연애와 결혼이 엄마의 꿈과 행복을 위한 Hot Keyword임을 다시 한 번 느끼니, 다시 한 번 어깨가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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