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집에 있는 이유. Essay


이제는 집구석에 쳐박혀서 욕창에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안 나가게 된다.

왜냐.
친구들 만나봐야 늘 똑같은 얘기만 오가기 때문이다. (정말 특별한 친구 말고는.)

1) 남자친구 있는 친구를 만나면, 무조건 '오빠'랑 싸웠던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3년 전 것까지 다 들어줘야 한다. 
    없는 입장에서 배부른 소리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나를 보고 위안 삼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2) 남자친구가 없는 친구를 만나면, 서로 옛 남자친구들 흉을 돌아가면서 본 후 끝에 "제대로 된 연애 하고싶다."와
    한숨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3) 남자친구가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회사 욕과 또라이 상사 욕 배틀을 해야 한다.


특히 1번과 같은 상황이 너무나 많아 곤혹스럽다.
이러니, 어쩌다 친구들하고 만날 약속이 생겨도 그냥 집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슬슬 동생 보기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우스워보일까?

날 풀리면 소개팅이나 해야겠다.

 


김연아를 보면 배가 아파요.- 꼭 김연아만큼 성공해야 할까? Essay


김연아를 보면 배가 아파요.
너무 잘 나가니까. 너무 완벽하니까.ㅠ
난 쟤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데 왜 요 모양 요 꼴일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죠.
(너무 당치도 않죠? 알아요. 비교할 대상이랑 비교를 해야지ㅋㅋ 어디 가서 말도 못 해요.)

 
하지만, 전 세계를 휩쓴 자기계발서들은 현대인들을 이런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합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집에서 쫓겨난 흑인 미혼모였는데 저렇게 성공했잖아.
조앤 롤링은 빈털터리 이혼녀였는데 책 한 권으로 팔자 고쳤어.
너도 할 수 있어! 누구나 할 수 있어!
지금 그렇게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야!
남들은 벌써 '시크릿'을 알고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구!”

현대는 한 사람이 일생동안 이룰 수 있다고 기대되는 일들이 무궁무진한 세상이라는 겁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 빌게이츠도, 스티브잡스도, 오바마도 될 수 있다는 거죠.

 
알랭드보통은 이런 현대사회의 ‘성공’에 대한 강박적인 시선에 대해 꼬집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진 사회적인 지위가 100% 그 사람의 "성취의 결과"를 나타낸다는 주장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동시에,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항상, 전혀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그 모양 그 꼴'로 살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해도 되는 것일까요?

 
사실은, 돈이 없어 대학을 중퇴하고 차고에서 친구와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매킨토시'를 만들 수는 없는 거잖아요.

 
‘일상성의 발명가’ 알랭드보통이,
성공과 실패라는 상투적인 소재를 특유의 위트와 논리로 재해석하여 웃음을 선사하고 발상의 전환을 제안합니다.

직업관과 가치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무엇보다,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천하의 알랭드보통도 일요일 밤마다 월요병 때문에 베개를 눈물로 적신다니, 적잖이 위안이 되는군요ㅋㅋ)


                      <알랭드보통- 보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공 철학>



※<View subtitles>를 누르면 한글자막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오쿠다히데오의 매력이 한 풀 꺽인 소설. Book

최악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나의 점수 : ★★★

영화 <타이타닉> 같은 소설. 책을 읽고 난 직후에는 흥분과 감동으로 가슴이 뛰지만, 시간이 흐른 후 <스무살, 도쿄>와 같은 여운이 아쉬운...


2009-01-24

 

오쿠다히데오의 매력이 한 풀 꺽인 소설.

 

 

지난 두 달간, 책을 한 권도 못 읽었다. 이사를 하는 바람에 전철로의 이동 시간이 짧아진 탓이 크지만, <스무 살, 도쿄> 이후 필 꽂히는 책을 만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앞 부분만 읽다 책장에 도로 꽂아놓은 책이 9권째가 되자, 불안감이 몰려오기까지 시작했다. 이대로 책과 영원히 멀어지는 건 아닐까.

 

이런 두 달간의 방황에 마침표를 찍게 해준 것이 오쿠다 히데오의 <최악>이다. 졸업 이후 좀처럼 볼 일이 없는 6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지만, 카피 그대로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속도에 가속도가 붙는흡입력 때문에, 다 읽는데는 일주일의 출퇴근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다.

 

<최악>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세 사람의 세 가지 인생이 등장한다. 영세한 철공소를 운영하는 마흔 일곱의 가와타니 신지로, 가출 후 파친코를 전전하는 스무 살의 날건달 노무라 가즈야, 그리고 착한 맏딸이자 국내유수의 은행 직원인 스물 셋의 후지사키 미도리.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들 세 사람의 일상사가 중후반부까지 일일드라마처럼 디테일하게 묘사된다.

 

특히, 세 사람이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는 세 가지 ‘일’-철공소 사장, 날건달, 은행원-들은, 단지 한 인물을 설명하기 위한 배경이 아니라, 모든 사건의 발단이자 원인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다. 그래서 세 사람의 전문분야가 디테일하고 실감나게 그려지기 때문에 각기 다른 세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세 사람의 인생 곡선에 나도 모르게 쭈욱 빨려 들어가게 되는데, 이 때부터는 읽기 싫어도 끝까지 다 읽게 된다. 가속도가 붙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는 600페이지든 1200페이지든 상관이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오쿠다 히데오의 흡입력이다.

 

경제도, 사랑도, 인생도, 모든 것이 최악으로 치닫는다!”는 메인 카피를 보면, 평범했던 주인공의 일상에 갑자기 터진 최악의 사건이 주인공들을 위기로 몰아넣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내가 오쿠다 히데오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최악>에서 말하는 최악의 사건은 세 사람의 일상- 철공소의 스폿용접 작업과 제조업 피라미드에서 3차 하청업체의 비애, 자잘한 절도 행각과 애정 관계매일같이 반복되는 창구 업무와 참석하기 싫지만 자주 열리는 은행 공식행사 곳곳에 숨어있다. 시간이 가면서, 늘상 있어왔던 자잘한 문제들이 함께 진행됨에 따라 서서히 불행의 씨앗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데, 그러다가 우연찮게 (세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필연적이지만) 세 사람의 인생이 한 곳에서 뒤엉킨다

 

누군가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한 명의 사람을 알게 되는 것과 같다고. <최악> 한 권을 통해 나는 여러 명을 동시에 알게 된 느낌이다. 돈도 없고 빽도 없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해야 할 고민을 층층이 안고 살아야 하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 신지로,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십 년 가까이 이명에 시달리는 외로운 가즈야, 뭐든지 참고 이해하고 억제하며 살아가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린 미도리. 이 밖에 불행한 인생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주변 인물들가에데, 시바타, 야마자키. 물론 이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내 가슴을 아프게 했던 인물은 신지로였다. 그는 정말 정직하고 성실하게 가정과 공장을 지키려고 한 죄 밖에 없고, 사회 구조적인 약자였다.

 

그렇다고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우울하고 어두운 것은 결코 아니다.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속도감과 치밀한 심리 묘사, 다양한 인간 군상의 통찰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런 두께의 책을 전공 서적도 아닌데 독파했다는 뿌듯함도 한몫 하는 듯하다.

하지만 세 사람의 인생이 겹치는 소설의 절정과 결말 부분에서는 스펙터클한 요소를 넣어 상황을 '최악'으로 만들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작품을 쓴 듯한 작위성이 느껴져 아쉽다.

  

** 책 속 한 문장 **

 

"안 좋은 일이 있다는 건 인생의 중심에 서 있다는 증거야. ... 내 나이쯤 되면 안 좋은 일조차 없어. 워낙에 갈곳이라야 병원하고 도서관하고 은행밖에 없거든. ..." (218쪽)

 

오쿠다 히데오는 항상 소설 속에 어른을 등장시켜 좌절한 젊은이에게 희망과 응원의 메시지를 던진다.



P.S 한 달 후...
앞으로는 책을 읽고 나서 한 달쯤 후에 리뷰를 쓰든지 해야겠다.
책을 읽고 난 직후에는 흥분으로 가슴이 떨려 별점을 후하게 주었었지만,시간이 지나자 내 머리 속에 이 작품이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스무살 도쿄> 때와 같은 긴 여운이 아쉽다. 오쿠다히데오, 그르지 마~요.


죽도록 미운 당신에게 편지쓰기 Book

치유하는 글쓰기
박미라 지음 / 한겨레출판
나의 점수 : ★★★

한 번쯤은 해볼만한, 내면 치유를 위한 글쓰기 가이드



2009-01-27

죽도록 미운 당신에게 편지쓰기, 내 상처와 마주하기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내 삶에 큰 의미가 있었던 한 사람으로 인한 상처 때문이었다. 지금 그 상처 자체는 많이 아물었지만, 그 때 생긴 피해 의식이 최근까지도 내 의사 결정들에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인생이 조금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는 궁금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나왔다.  '글로 어떻게 치유한다는 걸까?' '저자가 정신과 전문의도 아니던데.'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정말 나한테 효과가 있을까?' 등등....

이 책은 한 마디로, 저자가 진행했던 집단 심리 치유 프로그램의 경험담을 담은 책이다. 제목만 보고, 글쓰기의 여러 기능 중 하나로 치유적인 기능을 강조하는 내용일 거라는 내 예상과는 많이 어긋났지만, 꽤 도움이 될 것 같긴 하다. 그러나 문학도 인문서도 아닌 '실용서'니 만큼, 읽고 깨닫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 아직까지 수확은 거두지 못한 셈이다. 

저자는 가장 먼저, '죽도록 미운 당신에게' 편지 쓰기를 권한다. 나는 케이스가 조금 다르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오심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일단 내면 깊숙이 억압해놓았던 내면의 미움과 분노를 해소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함으로써 마음의 짐을 덜고, 글쓰기를 통해 분노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방식만 조금씩 다를 뿐, '치유하는 글쓰기'는 모두 이와 똑같은 원리로 되어있다. 억눌러 왔던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을 내 것으로 인정하고 글로 표현한 후, 한 걸음 물러서서 내 상처를 바라보며 근본적인 원인부터 치유해가는 것이다. 책에는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글이 예시로 많이 실려있다. 문법에 안 맞는 문장은 기본이고, 단어만 죽 늘어놓거나, 계속 같은 말만을 되풀이하는 글도 있다. 심지어 상스러운 비속어나 욕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잘 쓰고 못 쓰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면의 감정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글들은 아주 어릴 때 겪은 가정불화나 폭력, 성폭력 등으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글이 많았다. 그에 비하면 내 상처는 애교 수준이었다. 우습지만, 이런 이유로도 사실  큰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소그룹 프로그램의 방법론을 소개하고 있는 만큼, 실제로 혼자는 할 수 없는 일들도 많다. 소그룹의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정기적으로 만남을 갖고, 온라인에서 글과 댓글을 통해 서로 소통하면서 안으로 꼭꼭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세상을 향해 여는 연습을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에서 치유는, 글쓰기 그 자체를 통해 이루어지기 보다, 깊은 상처를 여러 가지 형식의 글을 통해 표현하고, 그것을 온라인에서 타인과 공유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다보니 이 책에 의하면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결국 저자의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스스로 그런 소그룹을 만들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 그런 방법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을 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편지쓰기 등의 글쓰기는 충분히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고, '셀프인터뷰:나에게 나를 묻다' '떠나보내기' '핵심가치 찾기' 같은 것들은 치유를 위해서 뿐 아니라 창의성을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꼭 해볼만한 흥미로운 글쓰기 방법인 것 같다. 나도 이제 내 상처와 용기있게 마주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속지 말자, 목차빨. 다시 보자, 표지빨 Book

27살 여자가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
전미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나의 점수 : ★★

이 책을 사 읽을 바엔, 옆 자리에 앉은 대리님에게 술을 사달라고 해라.


2008-11-20

속지 말자, 목차빨. 다시 보자, 표지빨.


내 나이 스물 여섯(이 책을 읽었을 당시에는 그랬다. 새해에는 딱 스물 일곱이 되었다.).
직장생활 1년차.

15개월 가량 직장생활을 하면서 뼈아프게 느낀 것은, 직장생활에 있어서 업무적인 능력이 30이라면, 조직문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70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직급이 높아질 수록 달라지겠지만.) 또, 내가 아무리 똑똑하고 열정이 많다고 큰 소리 쳐도, 학교 다닐 때 동아리며, 학회에서 단체 생활을 성공적으로 해왔다고 잘난 척을 해도, 군대 생활을 했던 남자들의 조직 융화력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

저자의 말마따나, 회사문화, 조직문화는 남자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남자들에게 익숙한 문화다. 그러니 여자에겐 생소하고 힘들 수 밖에 없다. 잘 하고 있다, 싶으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펑, 이번엔 나아졌겠지, 싶으면 또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펑펑 터지는 총칼없은 전쟁터 같은 곳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작년 11월,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나는, 회사라는 조직의 냉혹함(?)에 다시 한 번 한기를 느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정확하게 이 책의 코어 타겟이었던 것이다. 목차를 보니 완전히 나를 위해 쓰여진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전미옥씨의 <성공하는 여자의 자기경영노트>에 대실망을 한 적이 있으면서도 '미워도 다시 한 번' 장바구니에 책을 담았던 것이다.

 또, 머리를 하나로 묶고, 내가 아주 즐겨하는 자세인 책상 다리를 하고 사무용 의자에 앉아 야근(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 표지를 보고 야근을 떠올릴 것이다.)을 하는 젊은 여성의 모습에 완전한 동질감을 느껴, 구매하기 버튼을 망설임없이 눌렀던 것이다.

각설하고, 이 책은 목차가 다인, 누구나 다 아는 당연한 내용만을 모아 만든 책이다.직장생활을 안해 본 사람도 상식만 가지고 이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내 직장 생활이 보통 사람들보다 17배쯤 혹독해서, 지난 1년여동안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거나. )

 나와 같은 고민으로 힘들어하며 이 책에 SOS를 치고자 하는 직장인 여성이 있다면, 이 책을 사 읽는 대신, 차라리 옆 자리에 앉은 대리님에게 술을 사달라고 해라. 그게 어느 모로 보나 107배 효과적이라고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아니면 다른 훌륭한 처세술 책을 찾아 보거나.) 하지만, 직장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또래 친구들끼리 모여 넋두리나 하고 있을 바엔 이 책의 목차를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무료니까.


아직 덜 큰 어른들을 위한 위로 Book

쿨하게 한걸음
서유미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나의 점수 : ★★★

학창시절 ‘그 나이쯤 되면 이러이러한 정도는 되어 있겠지’ 했던 기대가 모두 무너져버린 지금,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 등을 토닥여주는 사촌 언니 같은 소설.


2008-11-30

아직 덜 큰 어른들을 위한 위로   


독자들이 평소 느꼈지만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글로 '대신' 표현하는 것이 좋은 소설의 조건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나 역시 그 동안 그런 소설들에 아낌없이 별점을 주어왔다. 좀처럼 읽지 않던 한국 소설, 그것도 나와 세대가 거의 같은 30서유미 작가의 소설을 택한 것도, 정리되지 않은 나의 이 혼란한 시기를 소설을 읽으며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쿨하게 한걸음>100% 공감 가는 현실적인 소설이다. 이제 막 서른 셋이 된 연수는, 나와 7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성격과 모든 상황적 조건들이 나와 심하게 닮았다. 집안 분위기와 가족 관계까지도.

 

학교 다닐 때 그 나이쯤이면 이 정도는 되어 있겠지 했던 바로 그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지위나 명예는 커녕, 통장 잔고조차 얼마 없다는 것,부모님은 하루하루 약해지시고 늙어가시는 게 눈에 보여 안타까운데, 모아놓은 돈이 있나, 번듯한 직장이 있나, 그것도 아니면 든든한 사윗감이 있나, 큰 딸로서 부모님 기 펴드릴 일이 없어 마음이 늘 불편한 것. 하지만 표현은 결코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 학창시절에 공부 꽤나 했고, 이것저것 관심도 많고 아는 것도 많았지만 결국 쥐꼬리만한 월급 받으며 불안정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학창시절에 성적은 늘 바닥이었어도, 착한 외모를 타고나 일찍부터 '연애'계에 뛰어든 친구가 지금 돈 많은 남자 만나 떵떵거리며 사는 걸 보며 패배의식을 느끼는 것, 돈 잘 벌고 시집 잘 가 엄마 호강시켜주는 엄친딸과의 비교에 엄마와 한바탕하고 방에 들어와 문 닫고 훌쩍이는 일 등.

 

우리 주변, 아니 내 주변에서 늘상 일어나는 일들과 내가 늘 생각하는 것들을 소설은 놀라울 정도로 디테일하고 실감나게 재연해내고 있다. 콩 외엔 아무것도 넣지 않았습니다.라는 어떤 유제품의 광고 카피 대신'현실 외엔 아무것도 넣지 않았습니다. 라는 카피가 떠오를 만큼.

 

주인공 연수가 지적했던 대로 보통 영화나 소설 같으면 로맨스가 피어 올라야 할 딱 그런 상황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주인공을 힘들게 했던 생각 없고 운 좋아 잘 살게 된 친척들이 마지막에 가서 불행해지거나 혹은 알고 보면 불행하게 살고 있었다느니, 하는 권선징악적 장치도 없고, 뒤늦게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주인공이 결국은 꿈을 이룬다는 상투적인 엔딩도 <쿨하게 한걸음>엔 없다. 이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 드라마틱하고 임팩트 있는 요소가 한 두 개쯤 있긴 해야 한다는, 작가로서 뿌리치기 힘든 유혹을 모두 이겨낸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소설이 우리들의 현실을 심하게 잘 반영한 탓에, 소설은 내가 정리하지 못한 혼란스러운 현실 또한 혼돈스러운, 정리되지 못한 모습 그대로를 그려내고 있다. 결국, 내가 정의 내리지 못한, 피터팬과 웬디의 경계에 서 있는 의 인생, 의 꿈, 의 미래를 정의 내리는 일은 작가가 아난 바로 나 자신이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당신의 젊음에게 건배! Book

 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나의 점수 : ★★★★

코믹한 스토리에 신나게 웃다보면, 어느덧 인생과 꿈에 대한 성찰에 도달해있게 만드는 오쿠다 히데오의 재주!


2008-11-13

당신의 젊음에게 건배!   

  
<스무살, 도쿄>는 유쾌하다.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청춘 소설에 기대하는 풋풋하고 유쾌한 에너지들이 노련하고 명쾌한 문장을 통해 뿜어져 나온다. 총 여섯 개의 연작 소설로 구성된 <스무살, 도쿄>는 굉장히 흥미로운 구성을 취하고 있다. 히사오가 재수학원에 다니기 위해 홀로 도쿄로 상경한 20살 봄부터, 슬슬 인생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하는 29세 겨울이 이 소설의 배경인데, 여섯 장의 챕터가 각각 다른 해의 하룻동안 있었던 일을 그리고 있다. 이를 테면, 대학교 새내기 시절 중 하루, 도쿄로 상경한 날 하루, 광고 대행사 말단 시절의 하루, 광고 대행사 중간 관리자 시절의 하루 등등- 그 하루 하루의 에피소드를 통해 히사오의 20대 전체를 섬세하고 생동감 있게 조명해내고 있는 것이다.

 <스무살, 도쿄>와 느낌이 비슷한 소설로 무라카미 류의 <식스티 나인>이 생각난다. 젊은 날의 꿈과 방황, 어른이 되기 위한 소년의 성장통을 코믹하고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를 통해 그렸다는 점이 비슷하다. 하지만 주인공의 캐릭터에서는 분명 차이가 난다. <식스티 나인>의 주인공 켄이 무조건 일을 저질러놓고 보는 전형적인 골목대장 스타일이라면, <스무살, 도쿄>의 히사오는 나름대로  생각도 깊고 주관도 있지만, 소심하고 귀가 얇아 남의 시선 하나 하나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이다.


"창에 비친 스스로에게도 만족했다. 차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옷차림과 비교해도 결코 처지지 않았다. 문 가까이에 서 있는 여자애는 이따금 이쪽을 쳐다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아니, 틀림없이 보고 있을 것이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 시부야 역에서는 시퍼 룩 차림의 젊은 애들이 잔뜩 올라탔다. ....약간 압도되었다. 다들 패션 잡지 <뽀빠이>의 모델처럼 세련되었다. 아니, 나도 그들 못지않다. 어째든 JUN의 헐렁한 배기바지인 것이다

 "화제의 <스타워즈>가 개봉되면 누구보다 먼저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향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자. 자연스럽게 언급하는 게 좋겠지. 아참, <스타워즈>를 봤다. 뭐, 그럭저럭 재미있더라, 하는 식으로."


 길에서 만난 같은 나고야 출신 아저씨가 음악 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다무라에게 했던 말이, 마치 나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아, 한 동안 뇌리에 남아있었다. 어쩌면 우리 아빠뻘되는 오쿠다 히데오가, 이 책을 읽는 자신의 아들, 딸뻘 되는 젊은이들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젊은 놈이 평론가 같은 거 되어서 뭐해? 저기 객석에 앉아서 남이 하는 일에 이러쿵저러쿵 토를 다는 건 노인네들이나 하는 짓이야. 젊은 사람은 무대에 올라가야지! 못해도 상관없어, 서툴러도 상관없다고. 내 머리와 내 몸을 움직여서 열심히 뭔가를 연기하지 않으면 안돼! ....... 젊다는 건 특권이야. 자네들은 얼마든지 실패해도 괜찮다는 특권을 가졌어."


 


염세주의자들로부터 배우는 낙천적 삶의 자세 Book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나의 점수 : ★★★★

앞으로 닥칠 인생의 고통과 좌절을 우리가 어떠한 태도로 받아드릴 것인가에 대해 우리보다 먼저 고민했던 철학자들의 인생 이야기


2008-10-25 

염세주의 철학자들로부터 배우는 낙천적 삶의 자세 


"리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이 책이 정말로 어렵고 지루했기 때문에 더 이상 드 보통의 팬으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3장 좌절에 대한 위안(세네카)’을 읽을 때까지만해도, 나는 리뷰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나는 지금도 여전히 드 보통의 팬일 뿐 아니라, 더욱 빠져들게게 되었다. 쇼펜하우어와 니체로부터 ‘위안’ 정도가 아니라 거의 ‘구원’을 얻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고 낙심해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일까. 

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라는 원제를 가진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의  제목은, 많은 독자들이 지적하듯, 책의 실제 내용과 거리감이 많이 느껴진다.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라는 부제 또한 마찬가지다. (초판본의 제목이던 <드보통의 삶의 철학산책>이 그나마 제일 낫다.) 이 책은 그렇게 가볍고 유쾌한 철학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삶 가운데 느꼈던 혹은 앞으로 닥쳐 올 고통과 좌절을 우리가 어떠한 태도로 받아드릴 것인가에 대해 우리보다 먼저 고민했던 철학자들의 삶과 이론을 통해 교훈과 위안을 얻기 위한 다소 심각한 철학 에세이인 것이다.

인기 없음에 대한 위안(소크라테스),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 데 대한 위안(에피쿠로스), 좌절에 대한 위안(세네카),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몽테뉴)에서는 마음의 위안을 주는 내용이라기 보다는 '쉽게 읽는 철학 이야기' 쯤으로 느껴진다. 여기까지는 앞서 말한 것처럼 드보통의 전작들을 생각했을 때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불쑥불쑥 든다. 하지만 점차 드보통 특유의 재기발랄한 문장에 웃음도 짓게 되고, 마음 깊이 공감도 하게 되고, 철학적 통찰에 감탄도 하게 되는데, 이 빈도수가 뒤로 갈수록 느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쇼펜하우어)'과 '곤경에 대한 위안(니체)'에서 이 염세주의자들은, 사랑에 실패한 이들과 곤경에 빠진 이들에게 '본의 아니게' 큰 위안을 안겨주는데, 여기서 '본래 가장 염세적인 사상가들이 가장 쾌활할 수도 있다'는 드 보통의 말에 200% 공감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고 울고 있는 이들과 인생이 고통스럽다고 호소하는 이들 앞에 서양 철학의 거장들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나타나 이렇게 말해주는 것보다 더 큰 위안이 어디있겠는가? 

 "너 그 멍청이하고 안 헤어졌으면 행복했을 거 같니? 그건 완전한 착각이야. 절대 그럴 수가 없어. 이렇게 생각하는 멍청한 인간들이 많은데 말야. 사실 사랑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거든. 니가 그 놈이랑 헤어진 건, 니가 매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그 놈이 잘 나서도 아니고 니네 둘이 헤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린 자연의 섭리야. 하지만 슬프다면 마음껏 슬퍼해. 그게 정상이니까. (쇼펜하우어)" 

"살다보면 불행한 일이 생기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어? 고통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이고,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거야. 이렇게 질질짜고 있을 때가 아니야, 지금. 이런 고통들은 인생의 필수 코스고, 더 중요한 건 니가 이걸 어떻게 이겨내느냐 라는 거라니까. (니체)"
이렇게.

나는 이제 니체에 대해 더 알고 싶어져서, 니체의 저서들을 당장 사 볼 생각이다. 물론 드 보통 같은 안내자없이 섣불리 덤볐다가는 몇 년간 내 책장 한 구석에서 장식품으로 쓰여질 확률이 크지만.


"만약에 어느 음악가가 한 음색만을 좋아한다면 어떤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음악가는 모든 음색을 활용하여 조화를 일궈낼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역시 삶을 구성하는 선과 악을 가지고 그렇게 요리할 수 있어야 한다." - 니체






나에게도 뮤즈가 있었으면 좋겠다! Book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나의 점수 : ★★★★

말도 안 돼게 어려운 상황에서 집필을 해서 결국 세계적인 작가로 성공했다는 진부한 성공 스토리가 어떻게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


2008-10-09

 

나에게도 '뮤즈'가 있었으면 좋겠다.

 


스티븐 킹은 그 유명한 <미저리>,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 등 헐리웃 영화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공포 만화와 공포 영화를 좋아해서 공포 스릴러와 추리 소설을 주로 썼다고 하는데, 사실 환타지와 함께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장르 중 하나가 공포 스릴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많은 소설 창작법 관련 책 중 이 책을 가장 먼저 산 이유는, 상업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에겐 뭔가 특별한 비결이 있을 것이라는 얄팍한 기대감, 의외로 실패로 점철된 스티븐 킹의 '이력서'라는 챕터에 대해 인상깊게 쓴 블로거의 리뷰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 때문이었다.

기대했던 대로 100페이지에 달하는 스티븐 킹의 ‘이력서’는, 한 젊은이의 도전과 실패, 사랑과 성공을 다룬 일대기 영화의 시놉시스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쳤다. 특히 그가 열네 살 때, 출판사에 보냈던 원고와 함께 반환되는 거절 쪽지들을 꽂아놓은 못이 더 이상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더 큰 못으로 바꿨다는 부분에서는, 글쓰기에 대한 그의 열정이 결코 내가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깨닫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또, 대학 졸업 후 아이 둘을 키우면서 아내 태비사는 분홍색 유니폼을 입고 던킨 도너츠에서 일하고, 킹은 세탁소에서 모텔 침대보와 수건 따위를 빨며 밤마다 글을 썼다고 하는데,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집필을 하면서 결국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공했다는 진부한 성공 스토리가 어떻게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킹의 아내 태비는 킹의 작품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었는데, 어느 정도였냐 하면, 간신히 교편을 잡아 세탁소보다 벌이가 조금 더 나아진 상황에서, 첫 장편소설 <캐리>가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선인세를 받자마자 킹에게 교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글만 쓰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을 정도였다. 정말 존경스럽지 않은가!  태비가 없었다면 지금의 스티븐 킹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창작론'은 16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챕터는 킹만의 방법론을 한 가지씩 제시하고, 그에 관련한 경험담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특히 나는 그의 이런 방법론들이 그의 작품에서 어떻게 반영되었는가-혹은 그가 어떤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그 부분을 썼는가-를 상세하게 설명해준 부분들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90년대에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 <미저리>와 <돌로레스 클레이븐>의 원작이 예문으로 나와 신선하게 다가왔다.

 

또한, 맨 마지막의 '그리고 한 걸음 더'라는 짤막한 장에서는 <1408>(이 작품 역시 존 쿠삭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야 알았다.)이라는 그의 실제 작품 초고의 일부를 보여주고, 교정부호를 달아 수정본이 어디가 어떻게 수정되는지- 왜 그 부분을 삭제했는지, 수정했는지, 혹은 첨가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직접 달아 보여준다. 세심함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가 출판사로부터 한창 거절 쪽지를 받을 당시 한 고마운 편집인으로부터 "수정본 = 초고 - 10% "라는 주옥같은 충고를 듣고 그것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수정작업을 했다고 했는데, 나 또한 그의 충고에 충실하기 위해 리뷰를 수정하면서 엄청난 삭제를 감행했다.)

 

 이 책은 글쓰기에 필요한 디테일한 테크닉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대신, 창작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글쓰기를 시도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고민했을 법한 아주 기초적이지만 중요한 문제들-소설의 시작, 소재와 배경의 선택, 주제, 상징성, 집필 과정-에 대해 간단하고도 명쾌한 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물론 철저히 스티븐 킹만의 주관적인 방법론이라 전통적인 소설창작법과는 거리가 있고, 안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창작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 그리고 이제 막 글쓰기라는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 사람에게는 대단히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날마다 아홉 시부터 정오까지, 또는 일곱 시부터 세 시까지 반드시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뮤즈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면 뮤즈는 조만간 우리 앞에 나타나 시가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마술을 펼치기 시작할 것이다. (본문 191쪽) "



별 10개를 줘도 모자란 수작! Book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나의 점수 : ★★★★★

다시 한 번 이런 소설을 만날 수만 있다면, (과장을 조금 보태면) 내 영혼이라도 팔 것이다...!


2008-09-20

별 10개를 줘도도 모자란 수작!

'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오웰이 1928년부터 1932년까지 5년여 동안의 밑바닥 체험을 바탕으로 쓴 첫 작품인데, 대학교 때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는 내가 조지 오웰에게 빠져든 계기가 되었었다.

이번에 나는 이 책을 다시 사서 4일만에 다 읽었는데,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출퇴근 전철 안에서밖에 책 읽을 시간을 낼 수 없는 나에겐 경이로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3일을 내리 굶다 잔칫상을 마주 한 사람처럼 숨 한번 안 쉬고 ‘허겁지겁’ 읽어댔는데, 문자 그대로 한 번 열면 멈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편도 1시간 10분 걸리는 출퇴근길이 너무나 짧게 느껴져, 회사와 집 사이가 좀 더 멀었으면, 하는 정신 나간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취업난이 요즘처럼 심각하지만 않았다면, 회사 째고 내릴 역을 그냥 지나쳐서 소설을 끝까지 다 읽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억제하지 못했을 거다.

파리의 빈민가 콕도르 거리에 살던 주인공은 어느 날 일자리를 갑자기 잃고 방에 도둑이 들어 한 순간에 무일푼이 된다. 돈을 아끼기 위해 거의 굶다시피하며 시체처럼 침대에만 누워지내다가 어렵게 어렵게 접시닦이로 취직해 하루 17시간을 노동하며 생계를 유지해간다. 조금 편한 일자리가 있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런던으로 가는데, 외국에 나간 고용주가 한 달후에나 돌아오기 때문에 그 때부터 한 달 동안 거리의 부랑인들과 부랑 생활을 하게 된다.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진짜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이지만, 분위기는 침울하거나 비극적이지 않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서술하는데, 읽다 보면 유쾌해지기까지 한다. 특히, 인종 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콕도르 거리의 크고 작은 사건들과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나도 한 번 그 곳에서 살아봤으면’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부랑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진데, 부랑자 구호소나 구빈원 같은 곳에서도 나이가 특히 많거나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부랑인들끼리 음식과 돈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주기도 하는 등 좋은 일이라곤 없을 것 같은 부랑 생활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마냥 훈훈한 것만은 당연히 아니어서 싸움박질과 욕설, 절도, 사기 사건은 파리에서나 런던에서나 끊이지 않는다.

 이 소설이 놀라운 점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하나는 평범한 우리네 삶(혹은 한국의 문화)과는 완전히 다른 그들만의 세계, 접시닦이와 노숙자의 밑바닥 삶에 관한 완벽한 통찰이고, 또 하나는 그의 재기발랄한 문장이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모습을 그림 그리듯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표현력 뿐 아니라, 내가 마치 그 생활에 풍덩 뛰어든 것처럼 피부에 와닿을 만큼 충실한 서술과 그것에 담긴 위트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가난과의 첫 만남인데 이것이 너무나도 이상하다. 가난이라면 정말 생각도 많이 했고 평생 두려워해왔고 조만간 닥쳐온다고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닥치고 보니 완전히 다르고 또 시시하게 다르다. 아주 단순하리라고 여겼는데 복잡하기만 하다. 끔찍하리라고 여겼는데 그저 궁상맞고 따분할 따름이다. 이를테면…

빨랫감을 맡기던 세탁소에 발을 끊는데 그러면 세탁소 여자가 지나가는 당신을 보고 왜냐고 묻는다. 뭐라고 얼버무리면, 그 여자는 다른 데에 맡긴다고 여기고 평생토록 당신과 원수가 진다…

답장하고 싶은 편지들이 있지만 우표가 너무 비싸 못 보낸다… 매일 끼니 때가 되면 겉으로는 식당에 가는 척하고 나와서 뤽상부르 공원에서 비둘기를 구경하며 한 시간 빈둥거린다. 그리고는 주머니에 음식을 숨기고 집에 돌아온다… 가정용 식빵이 아니라 호밀빵을 사야만 하는데, 그것은 호밀빵이 더 비싸지만 둥글어서 주머니에 숨겨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 22쪽)

 
현실에 지치고 답답할 때, 일상을 탈출하고 싶을 때 이 책을 읽는다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환각증세'를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작가가 밑바닥 생활로부터 얻은 통찰과 -<동물농장>과 <1984>에서 그랬던 것처럼- 부조리한 사회를 향한  비평적 시선은, 단순히 방황하던 젊은 시절의 고생담을 무용담처럼 포장한 싸구려 소설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흥분과 여운을 선사한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대형서점에 가서 21페이지부터 3장만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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